귀신들린 벽
벽과 벽[1], 천장과 바닥을 샅샅이 살펴보던 인간은 귀신들린 벽에 대해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이건 직접 보고 만져 본 이야기입니다. 물론 혼자였어요. 초행길이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어요.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이동하며 주위를 살폈습니다. 길을 걸으며 다른 인간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상점안의 물건을 살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벽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어요. 건물의 벽이 아니고, 야외에서도 벽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세상의 끝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 결계가 좋겠네요. 결계 속 세상이었어요. 그리고 그 벽은 귀신이 들려있었어요.
나는 그 인간의 소리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처럼 무의식의 상태에서 그 것을 눈치채는 순간, 그리고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표현하는 것인지 물었다.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꼭 같지는 않아요. 무의식의 상태라기 보다는 의식이 선명한 상태에서 보는 것이죠. 제가 명상에서 귀신들린 벽을 보았을 때 그건 제 무의식으로 들어 간 것은 아니에요. 그것보다는 VR 기기를 쓰고 걷는 경험 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2]
[1] 귀신에게 벽은 침대와 같다. 귀신은 물질이 아니므로 질량도 없고, 전자의 반발력도 받지 않으니까 벽, 인간, 땅 등 어디든지 통과하고 중력의 영향도 받지 않으니 떠 있을 수 있다. 이런 귀신에게 벽은 아늑함과 쿠션감같은 망상을 심어준다. 벽은 인간이나 다른 귀신과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며 지켜볼 수 있는 휴식처이다. 귀신은 집, 물건, 특정 인간에게 종속되는 감정을 느껴 특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해 종종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받지만, 그건 특정 귀신의 이야기이다. 큰물은 건너지 못해 외국으로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 역시 그 땅에 미련이 남아서 생긴 귀신의 심리적 결계이다.
[2] 가상 현실(VR) 세계를 설계할 때 그리드를 이용한다. 사용자는 그리드의 영역 밖 공간이나 기기를 착용한 다른 사용자에 근접하게 되면 외계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보거나 뚫린 구멍을 보게 된다.